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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로마의 고전주의가 다시 부활하다 [김신의 가구 이야기] ⑨

by 기타치는목수 posted May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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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인류의 가구부터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구 디자인의 본질을 건축 역사와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현대 가구에서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소개한다. ​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유럽에서는 고전 양식이 빛을 잃고 말았다. 고전 양식의 문법도 잊었고, 건설 방법도 잊은 듯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양식을 대체한 것은 고딕 양식이다. 고전 양식은 지중해의 유럽 남부, 즉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전했다. 고전 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기둥들이 연달아 늘어선 열주와 그것이 받치는 엔타블라처entablature가 하나의 문법을 이루는 오더*order: 기둥인 칼럼과 보인 엔타블라처의 구성조합 라고 지난 다섯 번째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반면에 고딕 양식은 태양이 작열하고 따듯하고 밝은 지중해 지역과 달리 알프스산맥 북쪽의 숲으로 울창하고 춥고 어둑어둑한 지역에서 발달했다. 땅과 기후는 전혀 다른 양식을 탄생시킨다. 고딕 성당의 벽은 첨두아치와 복잡하고 정교한 트레이서리 장식, 그리고 버팀부벽이 개방적인 고전 양식의 열주를 대체했다. 그에 따라 고딕 양식에서는 경쾌한 오더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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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애기나 섬에 건설된 아페아 신전. 고전 양식은 열주들이 늘어서 개방적이다. 칼럼과 엔타블라처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Paweł 'pbm' Szu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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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건설된 프랑스 렝스 성당. 버팀부벽과 공중부벽, 트레이서리 장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G.Garitan 

 

 

중세 말기인 14세기부터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다양한 산업으로 부가 축적되었다.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에서는 직물산업, 무역, 특히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자본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상인 세력은 강력한 금력을 바탕으로 귀족을 누르고 도시를 운영하기에 이른다. 

피렌체에서 발행하는 금화인 '플로린'은 유럽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통화가 되었다. 15세기 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된 피렌체에서는 국제적인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이 이 도시의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했다.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상인 세력을 교회에 작은 기도실chapel 공간을 돈을 주고 산 뒤 사적인 예배 공간으로 삼았다. 이들은 그곳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하고 교회에 상당한 돈을 기부했으므로 교회도 상인들의 사적 예배 공간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로써 상인 세력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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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토르나부오니 예배당. 은행가 조반니 토르나부오니의 가족 예배당으로 미켈란젤로를 도제로 두었던 기를란다요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Domenico Ghirlandaio

 

 

피렌체에서는 14세기부터 거대한 성당을 짓고 있었다. 이 성당은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부활하려는 듯 지름이 무려 40미터가 넘는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돔을 구상하고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건축가가 나타나지 않아 무려 100년간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뚜껑이 열린 성당은 비바람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인 것이다. 

대개 돔은 그 밑으로 나무 거푸집*영어로 ‘centering’이라고 한다 을 쌓은 뒤 그 위에 안전하게 벽돌로 돔 지붕을 쌓고, 회반죽이 다 굳으면 나무 거푸집을 제거함으로써 돔을 완성하는 공정을 밟아야 한다. 하지만 이 성당의 벽 높이는 이미 42미터다. 42미터 높이에서 돔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높은 돔의 거푸집을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목재가 필요한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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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를 만들기 위한 나무 거푸집. ⓒPhotographic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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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성당으로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Bruce Stokes

 

 

이때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라는 천재 건축가가 나타나 이 난제를 해결한다.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천재 다빈치보다 앞선 15세기의 르네상스맨으로서 그가 죽은 뒤 3년 뒤에 다빈치가 태어났다. 

브루넬레스키는 아무런 거푸집 없이 벽돌을 나선형으로 쌓아 올려 돔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내쌓기는 벽돌들이 서로 의지하도록 해서 그 밑에 거푸집을 받치지 않고도 경사가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단계에서도 벽돌들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거대한 돔은 고딕의 정신과 대조되는 로마식 원형의 부활이다. 고딕 성당에서는 뾰족한 첨탑을 추구하지 둥근 돔을 만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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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성당의 돔을 만드는 데 적용한 벽돌쌓기 방법. 수평과 수직으로 만나는 벽돌들을 나선형 모양으로 쌓아 올려 거푸집 없이 돔을 완성했다.

 

 

브루넬레스키의 뛰어난 해결책은 그가 버팀부벽과 공중부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고딕과 대조된다. 40미터가 넘는 벽 위에 엄청난 무게의 돔을 올리면 벽에 강력한 횡압력이 발생한다. 이것을 막아내려면 버팀부벽과 공중부벽이라는 고딕식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로마의 고전주의를 부활시키려는 브루넬레스키의 뜻과 맞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르네상스, 즉 ‘로마 양식의 재생’이라는 의미를 가장 먼저 실현한 르네상스맨 중 한 명이다. 1천 년이 넘는 중세 기간 동안 로마의 고전주의는 잊혔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가서 폐허가 된 로마의 유적을 연구하며 고전주의,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가 아니라 로마식 고전주의를 부활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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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성당의 돔은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버팀부벽이나 공중부벽 없이 굳건히 서 있다. ⓒMike McBey 

 

 

브루넬레스키가 처음으로 맡은 건축 프로젝트는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치Ospedale degli Innocenti’로서 고아원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의 정면을 보면 아치들이 연속된 아케이드 공간을 볼 수 있다. 아케이드arcade는 아치들이 연속된 공간을 뜻한다. 아케이드의 기둥은 코린트 양식 칼럼이며 아치 위로 엔타블라처가 길게 구성되어 수평선이 강조되어 있다. 2층에 난 창문은 그리스 신전의 페디먼트pediment 모양이다. 오더와 페디먼트는 뚜렷하게 고전주의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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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치의 정면에는 엔타블라처와 칼럼의 조합이라는 오더가 다시 부활했다. ⓒWarburg 

 

 

브루넬레스키의 말년 작품인 '파치 예배당Pazzi Chapel'은 고전주의가 추구한 이상인 조화로움을 완벽하게 구현된 건물로 평가받는다. 이 건물 역시 전면부가 엔타블라처와 코린트 양식 칼럼으로 구성되어 고전 양식을 표방한다. 중앙의 배럴 볼트barrel vault *터널처럼 생긴 둥근 지붕 역시 리브 볼트rib vault *고딕이 지향한 뼈대가 지지하는 지붕 와 대비된다. 파치 예배당의 내부는 벽에 일종의 가짜 기둥, 즉 모양만 만들어놓은 필라스터pilaster와 엔타블라처가 마치 부조처럼 조각되어 있다. 지붕은 둥근 돔이다.

 

 

 

파치 예배당의 파사드에는 오더order가 적용되었다. ⓒBenjamín Núñez Gonzál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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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치 예배당의 내부에도 오더가 적용되었고, 엔타블라처와 칼럼은 실질적인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부조로서 장식이다. 
오더의 구성이 매우 조화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Gryffindor 

 

 

오더와 배럴 볼트, 돔, 필라스터와 같은 로마식 고전주의가 부활하면서 가구 역시도 변화한다. 라파엘로가 그린 <안시데이의 성모>를 보면, 성모가 하이백 체어에 앉아 있다.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16세기까지도 고딕의 하이백 체어가 르네상스 시대에도 계속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딕의 하이백 체어 등받이에 첨두아치와 트레이서리 장식이 조각되어 있는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하이백 체어 등받이에는 오더가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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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데이의 성모>, 그림: 라파엘로, 1505년. 성모는 고전주의의 하이백 체어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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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하이백 체어, 16세기. 오더의 엔타블라처(보)와 칼럼(기둥)이 장식되어 있다. 사진출처: www.1stdibs.com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카소네cassone'라는 가구가 태어났다. 유럽에서는 예전부터 체스트chest, 우리로 치면 궤짝처럼 생긴 작은 수납장이 있었다. 크기가 작아서 이동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아주 실용적인 가구다. 

카소네는 이 체스트에서 파생된 가구로 보인다. 카소네는 주로 이탈리아의 부유한 가문이 딸을 시집 보낼 때 귀중품을 담아 딸려 보내는 가구다. 시집간 딸은 카소네를 자신의 방에 두어 보관한다. 카소네에도 오더가 적용되어 있다. 바야흐로 중세의 고딕이 저물고 고대의 고전주의가 건축과 가구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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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에 그림을 그린 카소네, 15세기. ©Luis García 

 

 

글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designpress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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