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고딕 성당을 모방한 고딕 가구 [김신의 가구 이야기] ⑧

by 기타치는목수 posted May 02,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원시 인류의 가구부터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구 디자인의 본질을 건축 역사와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현대 가구에서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소개한다. ​

 

 

고딕 건축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는 빛과 높이라고 지난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건축 디자인의 핵심적인 과제 중 하나는 창과 벽, 실내 공간으로 빛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하지만 가구란 캐비닛처럼 안쪽 공간이 있더라도 사람이 그 안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가구에서 빛의 유희가 고려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반면에 높이는 어떨까? 높이는 가구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다. 하늘을 찌르는 고딕 가구의 높이가 가구에 반영된 대표적인 사례가 ‘하이백 체어high back chair’다.

 

 

01.jpg

15세기 프랑스 하이백 체어 

 

 

하이백 체어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를 말한다. 중세에는 유럽이라고 하더라도 의자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중세의 평민들은 등받이가 없는 옆으로 긴 스툴에 앉아 밥을 먹었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따르면 18세기 이전 가난한 사람들은 가구가 없거나 거의 없었다고 하니 중세에 의자가 아주 귀한 가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등받이와 팔걸이까지 있는 의자라면 그것은 대개 집안 가장의 가구다.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의 16세기 그림 <농가의 결혼식The Peasant Wedding>을 보면, 결혼식 손님들이 모두 기다란 스툴 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딱 한 사람, 신부의 아버지로 보이는 한 노인만이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 제대로 된 의자에 앉은 이 노인은 잔치의 주인이고, 그의 지위는 등받이가 있는 독립된 의자로 표현되었다. 

 

 

02.jpg

<농가의 결혼식>, 그림: 피터르 브뤼헐, 1568년 

 

 

의자가 이렇게 귀하다면 재료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 하이백 체어는 권좌로 쓰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거대한 의자는 움직이기도 힘들다. 중세에 제작된 하이백 체어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고딕 양식 하이백 체어는 대부분 19세기 고딕 부흥운동 때 제작된 것들이다. 하지만 중세 책에 묘사된 그림으로 중세 고딕 양식 권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1425년에 발행된 <시간의 책>이라는 채식필사본*화려하게 그림을 그려 넣고 모든 글자를 손으로 쓴 중세의 책 에 묘사된 그림을 보면, 왕의 권좌가 나온다. 그림의 내용은 신약성경의 한 대목으로 헤롯왕이 군사를 시켜 아이를 죽이는 잔인한 장면이다. 이때 헤롯왕은 등받이 위에 캐노피(덮개)가 달린 하이백 체어에 앉아 있다. 이 그림의 시대 배경인 고대 유대 지방에 이런 의자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 그림을 그린 중세의 화가는 고대 유대 문화를 고증할 수 없었고, 단지 자기 시대에 대한 경험과 학습으로 유대 문화를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헤롯왕이 앉아 있는 하이백 체어는 고대 세계가 아니라 중세 유럽 문화를 반영할 뿐이다. 왕관이나 의상, 장식 모두 중세 유럽의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의 인종까지도 유대인이 아니라 게르만족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긴 하이백 체어는 실제로 중세 유럽의 권좌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03.jpg

<시간의 책>에 묘사된 고딕 하이백 체어, 1425년 

 

 

하이백 체어는 권좌이므로 더욱 고딕 성당의 수직성을 모방한 것이다. 높이는 곧 권위와 연결된다. 19세기에 유럽에서는 고딕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고딕 양식의 하이백 체어도 이때 다시 유행하게 된다. 고딕 리바이벌 하이백 체어의 높이는 무려 2미터가 넘는다. 권위 있는 자리 위에 닫집(권좌나 불좌 위에 달아놓은 집의 모형) 또는 덮개(캐노피)를 달듯이 하이백 체어에도 대개 덮개가 달려 있다.

 

 

04.jpg

16세기 프랑스의 하이백 체어. 사진출처: www.1stdibs.com 

 

 

고딕 가구는 고딕 성당의 높이만 모방한 것이 아니다. 고딕 성당의 여러 특징들 중에서 삼각형 모양의 첨탑spire과 그보다 작은 피너클pinacle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고딕의 가장 강력한 아이덴티티로 강하게 새겨져 있다. 영국 노리치 교구 목사를 위한 의자를 보면 쾰른 성당의 남쪽 문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당의 첨탑과 피너클이 의자의 등받이로 그대로 옮겨 간 듯하다. 첨탑의 표면에는 돌기 모양의 ‘크로켓croket’이라는 장식이 연달아 붙어 있다. 이것은 식물을 모방한 장식인데, 의자의 등받이에도 똑같이 붙어 있다. 쾰른 성당 창문의 형태인 첨두아치는 의자의 등받이 장식이 되었다. 첨두아치는 고딕 성당의 넓은 창문을 확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공학적인 구조물이다. 다시 말해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필연적인 구조다. 하지만 의자 등받이에 새긴 첨두아치는 그런 기능과 무관한 장식이다. 건축의 구조가 가구로 옮겨 갈 때 그것의 기능은 사라지고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만 남게 되는 것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05.jpg

쾰른 성당의 서쪽 대문과 영국 노리치 교구 목사를 위한 고딕 의자. ⓒHeribert Pohl 

 

 

이처럼 가구의 장식으로 쓰인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구조는 ‘첨두아치’다. 첨탑과 피너클이 고딕 가구, 특히 의자의 등받이 형태를 만드는 데 적용되었다면, 첨두아치는 의자뿐만 아니라 캐비닛과 테이블, 심지어는 피아노 등 다양한 가구는 물론 악기의 표면 장식으로도 활용되었다. 그런데 첨두아치를 가구에 적용할 때는 그 뾰족한 모양의 선만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고딕 성당에서 첨두아치가 창에 적용될 때는 ‘트레이서리tracery’라는 장치가 반드시 디자인된다. 고딕 성당의 창문은 굉장히 크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오늘날과 같은 강화 유리가 아니므로 바람에 취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창문 앞에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보호막을 붙여 창을 아름답게 분할했던 것이다.

 

 

06.jpg

첨두아치 모양의 고딕 양식 창이 트레이서리로 분할되어 있다. 

 

 

트레이서리 장식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그란 형태 4개로 구성한 ‘콰트르포일quatrefoil’과 3개로 구성한 ‘트레포일trefoil’이 대표적이다. 고딕 건축을 보면, 표면이 콰트로포일과 트레포일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트레이서리로 가득 차 있다. 초기의 트레이서리는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기술이 발전하자 극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모양으로 발전했다. 거대한 장미창을 비롯해 고딕 성당 표면의 곳곳에서 트레이서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고딕 성당의 뾰족한 첨탑, 피너클과는 다른 장식적인 요소로서 트레이서리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절정으로 이끈다.  

 

 

07.png

 콰트르포일과 트레포일. ©Pearson Scott Foresman 

 

 

08.jpg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장미창이 트레이서리로 장식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장식의 모양이 콰트로포일과 트레포일로 구성되어 있다. ©Serge Melki

 

 

트레이서리가 적용된 가구를 보자. 16세기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주의 권좌는 굉장히 높고 넓다. 너무 넓어서 차라리 소파에 가깝다. 이 의자의 드넓은 등받이는 네 개의 면으로 분할되어 있고, 각각의 면은 첨두아치와 복잡한 트레이서리로 조각되어 있다. 권좌의 덮개 역시 첨두아치가 적용되어 있고, 첨두아치의 밑부분은 트레이서리의 포일 모양으로 깎여 있다.

 

 

09.jpg

프랑스 영주 의자, 16세기 ©Hart Publishing Company 

 

 

10.jpg

19세기에 제작된 고딕 양식 캐비닛과 트레이서리 장식 표면의 세부. 사진출처: www.1stdibs.com 

 

 

명동성당의 강론대 위에는 닫집이 있다. 닫집은 한국에서 임금의 옥좌나 절의 불좌 위에 만들어놓은 집 모양의 구조물이다. 옥좌나 불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장치다. 서양에서도 권좌 위나 성당 강론대 위에 놓아 그곳에 앉은 이의 권위를 표현한다. 서양 성당의 닫집은 ‘시보리엄ciborium’이라고 부른다. 명동성당의 시보리엄에는 고딕 양식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첨탑, 피너클, 크로켓, 첨두아치, 트레이서리, 심지어는 플라잉버트리스까지. 명동성당은 19세기 말 한국에 세운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이다. 하지만 이 성당에는 플라잉버트리스는 없고, 피너클, 크로켓, 트레이서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그 정도 규모의 건물을 짓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공사였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고딕 성당과 견주는 건 무리다. 반면에 이 시보리엄은 고딕 양식을 더욱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11.jpg

명동성당의 시보리엄 

 

 

12.png

고딕 리바이벌 체어, 디자인: 로버트 벤투리, 1984년. 사진출처: www.philamuseum.org 

 

 

오늘날 남아 있는 대부분의 고딕 양식 가구는 중세가 아니라 대개 19세기 고딕 부흥운동 Gothic Revival 때 만들어진 것이다. 진짜 고딕 시대였던 중세의 가구는 오늘날까지 살아남기가 힘들다. 하지만 19세기 네오고딕 가구에서 알 수 있듯이 고딕의 매력은 20세기까지도 이어져 여전히 현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가 디자인한 ‘고딕 리바이벌 체어Gothic Revival chair’가 대표적이다. 등받이를 첨탑과 피너클 형태로 디자인했다.

글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designpress2016@naver.com)

 

 


Articles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