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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과 유연을 통해 도달한 아름다움, 조선목가구

by 기타치는목수 posted Sep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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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과 유연을 통해 도달한 아름다움, 조선목가구

장신의 숙련된 안목으로 다듬어진 가구
명쾌한 직선 구조가 가지는 곧음의 유지와 장식의 절제미
가장 온전할 수 있을 적절한 위치에 자리잡은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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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방탁자,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우드플래닛

 

 

조선목가구는 형태적으로 ‘곧음’이라는 특질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곧음’이 주는 미학의 정수를 만들어낸 조선의 장인과 선비들의 태도는 ‘유연함’을 근간에 두고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저술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 시대의 유물 중에) 시대를 초월해서 근대적이고 또 건강한 아름다움으로까지 번져 나갈 소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유산 중에 첫손으로 꼽힐 수 있는 분야가 조선 시대의 목공 가구들과 조선 자기들이다."


최순우 선생의 예언처럼 세계인들은 조선의 도자에 이어 이제 조선목가구에 열광하고 있다. 조선목가구가 전혀 다른 문화 전통을 가진 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조선목가구가 현대의 주거공간과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루는 현대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과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아카데믹한 환경에 편입한 도예와 달리 아직 개인 공방 위주의 시스템에 머물고 있는 국내 목가구 시장의 협소함은 광범위한 공감대를 불러올만한 이론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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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관복장,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우드플래닛

 

 

조선목가구가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내용과 가구를 만드는 목수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조선목가구가 가진 아름다움을 ‘곧음’과 ‘유연’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서두에 말했듯 조선목가구의 형태적 특질은 ‘곧음’이다. ‘호족반’ ‘구족반’ 등의 다리 형태를 가진 소반을 제외한다면, 조선목가구는 곡선으로 만든 가구가 극히 적다. 조선목가구의 대표적인 품목으로 사랑받고 있는 ‘사방탁자’나 ‘문갑’, ‘반닫이’ 역시 직선 형태이다.

유럽의 가구는 물론 북유럽 가구 역시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곡선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목가구의 직선 편향은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한국의 목공예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한국의 목공예>에서 저자 이종석은 다음과 같이 조선 목가구의 특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한국 목칠공예의 특징을 ‘간결한 선, 명확한 면’으로 집약해 지적한 견해는 바로 구조주의적 측면을 두고 한 말이다. 간결한 선이란 곡선이 무수한 세선細線이 아니라 몇 개의 직선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겠고, 또 명확한 면은 그 직선에 의하여 구획된 방형方形 혹은 장방형의 평면에 특별한 장식조차 없어 정돈된 느낌을 준다는 의미로 풀이할 만하다. 단순한 선과 평면에서 우러나는 구조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즉흥적으로 일시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장신의 숙련된 안목으로 다듬어진 것일 수밖에 없다.”

직선, 이라는 형태 속에 조선목가구가 가진 현대성의 일차적 요인이 있다. 현대성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비장식성’이다. 적어도 공예에 있어 장식성이란 기물이 가진 본래의 기능과 의미에서 멀어져 눈을 현혹케 하며 쉬이 질리게 만드는 부정적인 요소에 가깝다. 조선목가구는 명쾌한 직선 구조가 가지는 곧음의 유지와 장식의 절제를 통해 시대의 유행을 넘어서는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있다. 곡선과 문양이라는 장식성의 절제는 조선목가구가 작위적인 아름다움을 극복하고 수백년을 뛰어넘어 현대의 공간과도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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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장, 사진제공 동인방 ⓒ우드플래닛

 

 

 

조선목가구의 직선이 주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나무라는 자연의 소재를 가지고 와 자연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연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서양의 가구가 작위作爲가 주는 아름다움의 극대화를 추구했다면, 조선목가구는 자연과 인위人爲가 조화된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다.


이종석은 “작위적으로 아름다움을 앞세우려 하지 않고 실용에 최선을 다하면서 오랜 경험을 통해 가다듬어진 물건이기 때문에 우리는 승화된 세련미를 간직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민예연구자이며 미술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목공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른 말로 한다면 작위가 없고 미망이 없다. …가공이기는 하나 자연의 본능보다는 훨씬 더 자연의 의지를 분명하게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물보다도 더욱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가공이 단순한 작위와는 다르다. 작위라면 자연은 죽어 버린다. … 자연을 쫓아 더욱 자연에 작용한다.”라고 말한다.

물건을 만든다는 행위는 작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선목가구는 곧음을 통해 작위가 아닌 인위, 즉 인간의 행위라는 또 하나의 자연과 나무라는 자연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새로운 아름다움에 접근한다.

하지만 직선, 곧음이란 자칫하면 지루함, 무성의함이라는 시각적 함정으로 빠질 수 있다. 조선목가구는 그 함정을 ‘비례’라는 덕목으로 해결한다. 장식이 사라진 자리의 맨 앞에 남겨진 것은 ‘비례’일 수밖에 없다. 조선목가구는 직선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면서 비례라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최순우 선생 역시 “이조 목공 가구의 적정한 비례와 간결하고도 조촐한 면 분할에서 보이는 독창적 조형은 전체 한국 미술에서도 이례라고 할 수 있는 정연한 질서 미를 이루고 있다. 사방탁자와 문갑류들이 보여 주는 간명한 공간 구성과 쾌적한 면의 분할은 거의 독보적인 세계라고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목가구는 직선이라는 곧음을 통해 특유의 아름다움에 접근하였지만, 그 완성은 ‘유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직선을 사용해 만들어진 가구들은 제법 많다. 하지만 조선목가구가 유독 그만의 아름다움을 성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극단을 조절하는 ‘유연함’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나는 조선목가구가 가진 아름다움을 ‘8할의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하며, 내 작업의 미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8할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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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목골지, 사진제공 동인장 ⓒ우드플래닛

 

 

“<8할의 아름다움>이란 ‘적절한 멈춤’을 의미한다. 11이나 15의 넘침도 10이나 9의 꽉참도, 7이나 6의 부족함도 아닌, 그저 8할 정도의 자족함을 지닌 가구. 빔虛과 과잉過剩의 경계에서 스스로가 가장 온전할 수 있을 적절한 위치에 자리잡은 형태形態. 그 형태를 잡아주는 단단한 수공手工의 신뢰.” (김윤관 목가구 개인전 <조선 클래식> 전시 도록 中 2017)

조선목가구는 몇 가지 부분에서 기막힌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목적에 맞춰 유연하게 멈추고, 나아간다.

문화에 있어 단순비교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지만, 동아시아 3국의 목가구를 대강 비교하면 이렇다. 중국의 가구는 대체로 과잉과 확장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다. 일본의 가구는 기술과 형태에 있어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10이 만점이라고 한다면, 10의 정점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달한다. 그래서 중국의 공예가 경배의 대상이 되고, 일본의 공예는 경탄의 대상이 된다. 비판의 요지가 많지만, 야나기 무네요시가 “강대한 중국은 형태, 즐거운 일본은 색깔, 슬픈 조선은 선”(박홍규, <윌리엄 모리스 평전>에서 재인용)이라고 말한 것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조선목가구는 넘치는 법이 없다. 또한 경탄을 불러일으킬만한 궁극에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목가구를 만든 장인들과 선비들은 생활에서의 ‘쓰임’이라는 목가구의 목적을 잊지 않는다. 드러난 기교로 단단함을 자랑하지도, 현란한 문양으로 아름다움을 가식하지도 않는다. 생활의 기물인 목가구의 ‘쓰임’이라는 목적 아래 유연한 태도를 지닌다. 과잉과 극한의 가구는 사용할 때 편안하지 않다. 경배와 감탄으로 다가오는 기물들은 편하게 쓸 수가 없다. 일본의 극한에 가까운 다기茶器와 숨막히는 다도문화茶道文化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경탄의 물건을 쓰려면 격식과 예법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의 목가구는 인간을 예법으로 얽메지 않는다. 편안하게 쓰고, 쓰다보면 그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된다.

내게는 그것이 조선의 공예, 조선의 목가구가 가진 유연함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 유연함이 조선목가구의 아름다움을 유일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조금이라도 작업을 해 본 사람은 디자인과 제작에 있어 과장하거나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멈추는 것, 적절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다. 알지 못해서,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더 할 줄 알면서 스스로 멈추는 것. 이것은 평범한 수준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조선목가구의 이러한 곧음과 유연함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번쩍, 눈이 뜨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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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탁자장, 사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우드플래닛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최공호 교수는 조선목가구의 감상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선가구는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내공이 쌓인 연후라야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 가치를 알아채는 단계가 수월치 않은 것이다. 그것도 얕은 감각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볼 눈을 가지기까지는 나름의 연단이 필요하다. 취완가趣玩家들이 안목을 겨루는 품목에 조선가구가 꼽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경지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선목가구는 아름다움에 대해, 아름다움이 가지는 곧음과 유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도전해 볼만한 분야임에 분명하다.

지금의 한국공예는 조형적 장식성에 중독되어 일상과 유리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조선목가구 가진 ‘직선’과 ‘유연성’에 대한 숙고는 공예를 다시 일상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김윤관 /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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