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적칠관목주자(적칠 기법 느티나무 주자)

by 기타치는목수 posted Oct 24,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 제 71회 쇼소인(정창원) 특별전 @나라 국립 박물관 서론입니다.

https://blog.naver.com/cwj1999/222266405964

 

 

1. 적칠관목주자 (적칠 기법 느티나무 주자) 적칠문관목어주자, 적칠문관목주자, 적칠관목어주자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많이 알려진 관목주자입니다. 정창원 (쇼소인) 보물 중 대표 보물 입니다.

백제 의자왕이 하사한 물품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또한 사실 이 주자를 눈으로 확인하기위해 일본에 간거였습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는 백제 의자왕이 하사한걸로 계속 보관중이었다가 일본 메이지 유신에 수리를하면서 이름을 한반도에서 받은걸 은폐하기 위해 '적칠관목주자' 이름에 '문' 하나를 추가하여 '적칠문관목주자'라고 고쳣으며 신원 미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불상과 불경을 모시는 느티나무 괘짝. 이라고 사전적으로 명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안에는 대체 뭐를 넣어 보냈을지도 많이 궁금해집니다.

박물관 방문하였을때 이 것만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봣던것 같습니다.

디자인이 현세대 가구에 비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세련미를 갖추었으며 색깔도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이음새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는듯 약간 닳은 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양호한 상태입니다

특이한 점은 전체적으로 겉 표면이 느티나무 껍질을 그대로 살려서 디자인에 넣었습니다.

나무를 마치 통으로 사용한 듯한 느낌을 주는데 나무 결 등 재질이 너무 자연스럽고 멋들어져서 적색과 함께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당시 우리 조상님들의 디자인감각이 굉장히 센스있게 제작 했다고 느꼈습니다.

잠금장치도 굉장히 특이합니다. 유격이 없이 밀착 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반 가구에 비해 잠금장치가 다소 어려울수 있으나 내부의 물건을 매우 안전하게 지킬수 있을만큼 제작되어 있습니다.

 

 

SE-4d754b04-b50c-4f4f-9db2-652aae8c8533.jpg

1. 적칠관목주자 (적칠 기법 느티나무 주자) 적칠문관목주자 쇼소인 정창원

 

 

SE-0d9dce2f-4fd2-4d03-b5cf-1990d54db007.jpg

1. 적칠관목주자 (적칠 기법 느티나무 주자) 적칠문관목주자 쇼소인 정창원

 

 

SE-f0070c90-f5f3-4b2d-8b1e-6947e02a21d6.jpg

1. 적칠관목주자 (적칠 기법 느티나무 주자) 적칠문관목주자 쇼소인 정창원

 

 

SE-f0070c90-f5f3-4b2d-8b1e-6947e02a21d6.jpg

1. 적칠관목주자 (적칠 기법 느티나무 주자) 적칠문관목주자 쇼소인 정창원

 

 

 

정창원 유물에 대한 논문이 하나 있어 내용을 조금 첨부해 보시는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참고바랍니다.

 

赤漆槻木廚子一口

右百濟國王義慈進於內大臣

 

위 기록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이 內大臣8)에게 적색옷칠장 1개를 선물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내대신은 7세기 중엽 왜 왕권의 실세인 中臣鎌足(나카토미노 가마타리)이다.

이 적색옻칠장은 현존하지 않지만 이와 유사한 적색옻칠장이 정창원에 남아있어 의자왕이 선물한 옻칠장의 모양과 특징을 가늠할 수 있다.

국가진보장에 기록된 현존하는 헌물 중에 廚子一口[赤漆文槻木, 古樣作, 金銅作鉸具]라 하여 廚子의 재질이 赤漆文槻木으로 백제에서 보낸 赤漆槻木 廚子와 동일 계통임을 추정 할 수 있다. 덧붙여 양식은 古風이고 금동으로 장식된 가구라고 하는 옻칠장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또 정창원문서의 ‘延曆 12年(793) 曝凉使解’라는 소장품의 점검기록에는 현존하는 적색옻칠장을 ‘第一赤柒綾欟廚子’, 백제 의자왕이 중신겸족에게 보낸 것을 ‘第二赤柒 欟木廚子’라 하여 역시 동일소재와 특징을 지닌 옻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개의 닮은 옻칠장은 모두 백제에서 전해진 것으로 봐도 대과 없을 것이다. 국가진보장에 기록된 8세기 중엽의 시점에서 고풍 양식을 말한 것은 그 제작 연도가 의자왕이 생존했던 7세기 후반대의 물품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럼 현존하는 옻칠장의 구조와 양식은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한다. 크기는 높이 100㎝, 가로폭 83.7㎝, 세로폭 40.6㎝이다. 좌우 여닫이문으로 내부는 2개의 선반을 받쳐 3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앞면 중앙에는 금동제 열쇠와 자물쇠를 부착하고 이음새와 모서리 전체를 두른 금속제를 부착하여 고정시켰다. 하부는 사각의 받침대를 만들고 앞뒤면은 각이 진 타원형 모양의 공간을 두었고 좌우면은 각각 1개씩 공간을 만들어 한층 멋을 내었다. 

옷칠장의 재질은 나무의 결이 드러나는 느티나무과에 속하는 물푸레나무에 蘇芳을 염료로 한 자홍색으로 물들이고 그 위에 생칠을 하여 완성했다. 적색 계통을 물 드리는 소방은 인도지나․말레이반도․인도에서 산출되는 중요한 물품이라고 한다. 그 용도도 염색은 물론 목재나 종이․가죽에 착색에까지 사용되고, 또 약으로서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재의 표면재질을 투시할 수 있는 기법으로 자연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한 백제 공인의 높은 미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日本 正倉院의 百濟遺物과 그 역사적 성격’ - 논문 발췌

 

 

2410241418.jpg

241024141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