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인류의 가구부터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구 디자인의 본질을 건축 역사와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현대 가구에서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소개한다. |
19세기 말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캐비닛을 보자.(아래 사진) 이 캐비닛의 정면은 마치 건축물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캐비닛의 정면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기둥이 부조처럼 조각되어 있다. 기둥 위로는 캐비닛의 기능과 무관한 육중한 지붕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고전 건축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고전 건축 양식이 그리스에서 확립되었다. 신전에 적용된 이 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오더order’라는, 보와 기둥이 만나는 형식에 집약된다.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시작된 오더는 그 뒤 무려 2천 년 이상, 모더니즘이 태어난 20세기까지도 서양 건축의 규범으로 건물의 파사드를 통제했다. 오더는 건축을 규정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가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네덜란드 캐비닛 정면과 윗면에 적용된 것이 바로 오더다. 이번 글에서는 서양 건축과 가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인 오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르네상스 양식 캐비닛, 네덜란드, 19세기 말
ⓒMuseum Rotterdam
영어 오더order는 ‘순서’ 또는 ‘정돈된 상태’를 뜻하지만, 고전 건축에서 오더는 건축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의 조합을 뜻한다. 고전 건축의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을 보면 가장 윗부분부터 가장 밑부분까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신전 중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을 보자.(아래 사진) 맨 밑은 기단부에 해당하는 ‘크레피도마crepidoma’가 있다. 기단은 위에 기둥이 열을 지어 서 있다. 이 둥근 기둥을 ‘칼럼column’이라고 한다. 칼럼은 보에 해당하는 ‘엔타블라처entablature’를 받치고 있다. 엔타블라처는 지붕을 받치고 있다. 지붕을 앞에서 봤을 때 삼각형 모양을 형성하는데, 이를 ‘페디먼트pediment’라고 한다. 파르테논의 페디먼트는 수 천 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을 보면 기단부터 지붕까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크레피도마(기단부), 칼럼(기둥), 엔타블러처(보), 페디먼트.
©George E. Koronaios
건물의 정면을 봤을 때 수평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기단, 칼럼, 엔타블라처, 페디먼트는 모두 수평적으로 하나의 요소가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직적으로는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칼럼과 엔타블라처의 변화가 눈에 띈다. 고인돌이나 스톤 헨지 같은 인류 초기 거석건축을 보면 ‘기둥과 보’라는 요소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기둥과 보에 해당하는 칼럼과 엔타블라처가 고대 그리스 건축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오더란 바로 이 칼럼과 엔타블라처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조합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스 건축의 수직적 요소는 변화한다. 페디먼트, 엔타블라처, 칼럼, 크레피도마의 네 요소 중 특히 엔타블라처와 칼럼의 구성 조합을 오더라고 한다.
칼럼과 엔타블라처는 또 다시 각각 세 가지 요소로 나뉘어 있다. 짓는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칼럼의 맨 밑부분은 ‘베이스base(주초)’라고 한다. 베이스 위에는 기둥의 몸체라고 할 수 있는 ‘샤프트shaft(주신)’가 있다. 샤프트 위에는 ‘캐피탈capital(주두)’이 있다. 캐피탈은 기둥이 받치는 엔타블라처의 무게를 기둥의 몸체인 샤프트로 전달한다. 이렇게 칼럼은 캐피탈, 샤프트, 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칼럼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위에서부터 캐피탈, 샤프트, 베이스
칼럼이 받치고 있는 보, 즉 엔타블라처 역시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만드는 순서대로 설명하면 칼럼의 맨 윗부분인 캐피탈과 만나는 보를 ‘아키트레이브architrave’라고 부른다. 그 위에는 대개 부조로 장식을 하는 ‘프리즈frieze’가 있다. 프리즈 위에는 건물에서 약간 튀어나온 ‘코니스cornice’가 있다. 코니스는 해를 가리는 기능을 가진다. 한옥으로 치면 처마에 해당한다. 칼럼과 엔타블라처는 각각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전체 오더는 여섯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 조합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법과 같다.
엔타블라처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위에서부터 코니스, 프리즈, 아키트레이브
오더의 순서는 변함이 없지만, 오더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특히 엔타블라처의 프리즈, 그리고 칼럼의 캐피탈에서 그 변화가 눈에 띄게 일어난다. 그 변화는 곧 양식의 변화이다. 초기에 나타난 도리아Doric 양식에서 캐피탈은 장식이 없이 밋밋하다. 도리아 다음에 나타난 이오니아Ionic 양식에서 캐피탈은 소용돌이 형태의 장식으로 변화한다. 그 뒤에 코린트Corinthian 양식이 등장했다. 코린트 오더의 캐피탈은 아칸서스 잎을 모방하고 있다.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의 오더는 캐피탈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보인다.
오더는 근대 이전 서양 건축의 절대적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고전,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서양의 주요 건축 양식이 바로 오더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양식에 따른 오더의 차이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 이번 글에서는 오더가 가구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펴보자.
처음 소개했던 19세기 네덜란드에서 제작한 캐비닛을 보자.(아래 사진) 이 캐비닛의 정면에는 이오니아 오더의 칼럼 두 개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칼럼은 캐피탈부터 플루팅(세로의 홈)이 세겨진 샤프트, 그리고 베이스까지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 칼럼 위에는 신전의 엔타블라처와 일치하는 구조가 무겁게 올려져 있다. 여기에서도 코니스부터 프리즈, 아키트레이브가 틀림없이 묘사되어 있다. 사실 캐비닛에서 칼럼이나 코니스 따위가 기능적으로 무슨 필요가 있을까? 프리즈와 아키트레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기능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더를 굳이 캐비닛에 적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전 건축을 모방함으로써 가구는 계급적 상징성을 부여 받기 때문이다. 마치 귀족이 가발을 쓰고 값비싼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조각적인 가구의 표면은 귀족이 입은 화려한 옷에 비유할 수 있다.
르네상스 양식 캐비닛에 적용된 오더
(사진 출처: Museum Rotterdam)
가구 중에서 캐비닛은 오더가 가장 빈번하게 적용되는 범주다. 캐비닛은 건축과 비슷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이블과 의자에 오더가 적용되기도 한다. 20세기에 제작된 루이 16세 스타일(신고전주의 양식)의 사이드 테이블을 보자.(아래 사진) 상판은 오더의 코니스에 해당한다. 그 밑부분에 있는 가로의 장식대는 프리즈에 해당한다. 실제로 테이블의 이 부분 명칭이 프리즈다. 건축에서는 프리즈 밑에 아키트레이브가 있어야 하지만, 가구에서 아키트레이브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프리즈 밑으로 플루팅이 새겨진 다리가 4개 있다. 이 다리가 칼럼에 해당한다. 칼럼을 모방했기 때문에 이 테이블의 다리는 캐피탈, 샤프트, 베이스로 나누어져 있다.
루이 16세 스타일 사이드 테이블, 20세기 초.
(사진 출처: www.1stdibs.com)
오더가 적용된 의자는 르네상스 양식 때 소개하기로 한다. 끝으로 가구는 아니지만 서양 건물 실내의 주요 시설 중 하나인 벽난로를 소개한다. 벽난로의 프레임이 기본적으로 테이블처럼 기둥과 보로 구성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더가 적용되기 쉬운 시설이 되었다. 로버트 아담Robert Adam이 디자인한 벽난로 드로잉은 코니스부터 베이스까지 완벽하게 문법을 맞췄다.(아래 첫 번째 사진) 캐피탈의 모양을 보아 이 벽난로는 이오니아 오더로 디자인되었다. 로버트 아담은 신고전주의를 개척한 대표적인 건축가다. 따라서 그의 가구와 설비는 더욱 고전 건축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오니아 오더는 건축과 실내 건축, 가구에서 가장 많이 활용한 양식이다. 백악관의 벽난로도 이오니아 오더다.(아래 두 번째 사진)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벽난로에 나무를 넣는 사진을 보면, 벽난로의 칼럼 캐피탈이 소용돌이 장식임을 알 수 있다.
벽난로 드로잉, 디자인: 로버트 아담, 18세기 말
ⓒMetropolitan Museum of Art
바이든 대통령이 집무실 벽난로에 나무를 넣고 있다.
ⓒThe White House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오더의 구성 요소인 엔타블라처와 칼럼은 건축의 구조다. 그것이 없다면 건물이 성립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하지만 로마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더는 필연적인 구조라기보다 형식적인 요소로 바뀐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다.
글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designpress2016@naver.com)